호주에서의 사역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출판사역을 제정비하고, 교회 조직을 개편하고, 아무도 안된다고 했던 대학을 설립하고, 건강식품 사업을 시작하고, 요양병원 설립에... 아미 엘랜이 못하는 일이 먼가요?
시끌벅쩍한 미국을 떠나 호주로 떠난 엘랜 화잇은 어떤 경험을 했을까요? 거기에 더해서 엘랜의 아들 윌리의 러브스토리를 다뤄봤습니다.
에드슨 화잇으로부터 재림 교회안에 선교의 불을 지핀 미국 남부주의 선교, 여러가지 어러움들이 해방 노예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읽지 못하고,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억압받던 이들이 재림신앙을 받아들이는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재림 교회 안에서조차 생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죠. 2025년인 지금까지도 인종 문제를 앓고 있는 미국, 1800년대 말, 이런 어려움 속에서 남부주에서의 사역은 어떻게 진전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동안 재림 교회의 선교사들이 전 세계로 파송되고있엇다는 이야기를 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재림교회의 뒷마당인 미국 남부주에는 재림기별이 더디게 전해졌죠. 특별히 해방된 흑인 노예들을 위한 사역은 거의 없다시피했습니다. 엘랜 화잇은 남부의 사역의 중요성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이런 어려움을 각오하고 남부로 가겠닥고 나서는 이는 많이 없었죠.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나서서 남부에 해방노예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의 여파를 잠재우기 위해 전국을 투어하며 재림 교우들의 마음을 가라앉힌 엘랜 화잇, 와그너, 그리고 존스... 하지만 이들에게는 더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 후에, 엘랜은 호주로 파송?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요. 만일 여러분이 원하지 않던 파송 결정을 들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엘랜이 고민했던 내용입니다. 가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계획을 하시겠어요?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후,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모두가 다 존스와 와그너의 기별을 받아들였을까요? 대총회를 마치고 모두가 다 평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1888년 대총회 후, 엘랜 화잇과, 존스, 와그너가 마주했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해봤습니다. 잠깐, 존스는 단순히 믿음으로 말이암는 의에 대한 것으로만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죠. 존스는 재림 교회를 대표해서 미 상원에 초청되어서 1800년대 이슈가 되었던 일요일 법에 관한 청문회에서 재림교회를 대표해서 의원들 앞에서 재림교회의 입장을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1800년대는 참으로 쉴 날이 없던 때였음에 분명합니다.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그 대총회 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1880년대의 일요일 휴업령으로부터 시작해 다니엘서의 열뿔과, 갈라디아서의 율번 논쟁으로 번진 긴장감, 이것을 업고 미네아폴리스로 향하는 엘랜 화잇과 재림 교회 지도자들... 여러분이 미네아폴리스의 대총회에 참석했다면 어땠을 것 같나요?
버틀러와 와그너 사이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감,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까지 계속되어서 쌓여져간 재림교회 안에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 해봤습니다.
재림 교인이라면 누구나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1888년 대총회에서 일어난 일들이 1888년에 일어난 일들만으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부터 일어났던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대총회 회의에서 분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1888년 대총회를 통해서 이름을 날린 존스와 와그너, 이 둘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존스와 와그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엘랜은 약 2년의 시간을 유럽에서 보냈습니다. 눈부신 유럽에서의 선교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정작 유럽에서 초청을 받았던 엘랜은 망설였습니다. 엘랜의 유럽 여정은 어땠을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엘랜의 유럽 여정을 이야기해봤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제임스 화잇이 죽음 후, 엘랜의 적응과정과, 유럽 선교, 그리고 배틀크릭 대학이 다시 문을 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1881년에서 1883년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기들 입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제임스 화잇의 장례식, 그리고 그의 죽음을 어떻게 교회 지도자들이 받아들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또 재림 교회의 교육기관들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특별히 베틀크릭 학교의 상태를 점검해봤죠.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일생을 바쳐 재림 교회를 섬겼던 제임스 화잇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과연 재림교회는 제임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요?
베틀크릭에서 시작된 학교, 그리고 유럽과 호주로 가기 시작한 재림교회 첫 세대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공식적인 첫 선교사였던 J.N Andrews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1870년대에 엘랜과 제임스 부부가 겪었던 부부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또 서부지역에 새로 생겨나기 시작한 재림 교회에 리뷰지와 같은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기 시작했다고 했었죠. 그럼 1870년대에 엘랜과 제임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교회의 조직에 힘입어서 새로이 시작된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건강 개혁사업이라고 해야 하는게 더 정확할 수 있겠네요) 이 두 사업이 1870년대에 어떻게 재림교회에 중요한 기둥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서부로 이주하는 트랜드를 따라 서부로 이사한 이들로 더불어 교회가 세워지고, 서부에서 시작되는 재림교회의 사역들도 살펴볼 수 있엇죠. 이렇게 서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궁금했던 엘랜과 제임스도 서부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대총회장으로 선출된 제임스 화잇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불행히도, 과로한 탓인지 제임스는 그가 경험한 5번의 뇌졸중 중에 첫번째를 경험하게 되죠.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서 엘랜 화잇은 모든 것을 다 뒤로한체 남편 제임스를 보살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제임스가 회복되게 되었죠. 오늘은 대총회장으로 처음 선출된 제임스 화잇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19세기 당시를 배경으로 재림 교회가 어떻게 건강 개혁과 건강 원칙에 중점을 두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미국의 내전이었던 남북전쟁이 새로이 태어난 재림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재림 교인들이 국가에 충성하도록 하는가? 그러면 총을 들고 싸울 수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여섯째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군대에 갈 수 없는가... 당시 재림 교회 지도자들이 했던 고민들인데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