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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김형래
173 episodes
1 day ago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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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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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s (20/173)
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71] 상속, 가족의 사랑이 돈 앞에서 흔들릴 때

- 부모의 재산이 아니라, ‘미래의 내 돈’이라고 생각하는 세대

영국의 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향후 30년 동안 수조 파운드의 재산이 세대를 거쳐 상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위대한 부의 이동(Great Wealth Transfer)’이라 불리는 이 흐름은 한국 사회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막대한 자산의 이동이 ‘사랑과 신뢰’로 이뤄지기보다, 조급함과 불안, 그리고 돈의 힘으로 인해 왜곡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가 상승과 부동산 가격 폭등은 젊은 세대에게 상속을 ‘희망’이자 ‘필수’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에서는 2000년 평균 주택 가격이 8만4천 파운드(약 1억4천7백만 원)였던 것이, 지금은 29만3천 파운드(약 5억1천2백만 원)로 세 배 넘게 뛰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청년의 57%가 “가족의 도움 없이 집을 살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한국 역시 ‘영끌’ 세대와 ‘부모 찬스’가 일상이 되었지요.

이제 상속은 단순한 노후 자산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생존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아직 살아 있는 부모의 재산’을 이미 자신의 것처럼 여기게 되는 심리적 변화입니다. “언젠가 내 것이 될 돈인데, 지금 미리 쓰면 안 될까?”라는 유혹이 가족 관계를 뒤틀어 놓습니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재정적 학대’

영국의 노인 보호 단체 ‘아워글래스(Hourglass)’는 매년 7만5천 건 이상의 노인 학대 사례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이 중 80% 이상이 가족 구성원에 의한 경제적 착취입니다.

가장 흔한 형태는 “부모님, 손주 등록금 좀 도와주세요”, “지금만 빌려주세요”와 같은 정서적 압박입니다. 처음엔 도움을 요청하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요구로, 그리고 협박으로 변합니다.

어떤 자녀는 “돈을 안 주면 손주를 보여주지 않겠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부모가 더 싼 요양원으로 옮기도록 강요합니다. 이른바 ‘유산 보존(inheritance preservation)’이라는 이름으로, 노인의 소비를 제한하고 지출을 통제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가족의 재정 관리를 돕는 것 같지만, 사실상 노인의 경제적 자유를 빼앗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학대는 법적 범죄이지만, 피해자는 대부분 스스로 피해자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라는 믿음

노인들이 자녀의 행동을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 아이는 내 가족이야. 나를 해치지 않아.”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상담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를 돌봐주는 가족이니까’라고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합니다. 사랑과 신뢰가 돈의 문제로 얽히면, 관계는 순식간에 권력 관계로 변합니다. 돈을 가진 사람은 의존의 대상으로, 돈이 필요한 사람은 설득과 압박의 주체로 바뀝니다. 그렇게 가족 간의 ‘심리적 서열’이 형성됩니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는 늘고 있습니다. 부모의 퇴직금이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자녀, 고령 부모의 명의로 사업 자금을 빌려 쓰는 경우 등은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부모는 “내가 죽으면 어차피 그 돈은 자식에게 갈 텐데…”라며 마음을 누그러뜨리지만, 그 순간 이미 학대의 문은 열려버립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경계’

전문가들은 상속과 관련된 가족 갈등을 예방하려면 ‘관계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노년기에 접어든 부모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의사결정권자’로서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내 재산은 나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식을 분명히 해야 하지요.

또한 자녀와의 대화에서는 “돈을 주는 이유”와 “주는 시점”, “관리 방식”을 명확히 문서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영국처럼 ‘지속적 위임장(Lasting Power of Attorney)’ 제도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재정권을 맡기는 방법도 참고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상속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돕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지만, 그 사랑이 조건과 기대를 낳는다면 관계는 금세 변질됩니다.

노년의 돈, 노년의 자존감

돈은 오랜 세월의 노동이 남긴 흔적이자, 인생의 자존감입니다. 그 돈을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지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노후 재산은 단순히 가족에게 물려줄 ‘유산’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을 지탱하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내가 도와주면 저 아이가 행복할 거야.”라는 믿음은 따뜻하지만, 때로는 위험합니다. 자녀의 삶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한국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부의 이전’을 건강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상속을 둘러싼 도덕적 기준과 사회적 대화가 성숙해야 합니다. 사랑을 앞세운 재정적 착취를 막기 위해서는, ‘사랑’만큼이나 ‘경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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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y ago
15 minutes 7 seconds

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70] 치매가 드러낸 ‘인간의 마지막 온유함’

– 프루넬라 스케일스의 생애가 남긴 품위의 교훈

“치매는 프루에게 원래부터 있었던 진정한 온유함을 드러냈습니다.”

영국 배우 프루넬라 스케일스(Prunella Scales, 1932~2025)에 대한 작가 줄리언 마친의 헌사는, 노년의 인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프루넬라 스케일스는 드라마 ‘폴티 타워스(Fawlty Towers)’에서 단호하고 날카로운 시빌 폴티 역으로 영국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년은 화려함 대신, 조용한 치매와의 동행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녀는 2013년 혈관성 치매 판정을 받았고,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억과 언어를 잃어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무대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기억이 사라져도 ‘연극혼’은 남는다

마친은 오랜 친구로서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91세의 프루는 더 이상 대본을 외우기 어려웠지만, 여왕 빅토리아를 연기하던 그 시절의 감각만큼은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습니다. 마친은 남편 팀 웨스트의 권유로 그녀의 마지막 낭독을 녹음하게 되었고, 그 작업은 2023년 2월에 완성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빅토리아가 죽음을 맞는 순간, 프루는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연기했습니다.”

마친은 그렇게 회상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프로 배우의 호흡이 살아 있었고, 청중의 상상 속에서 여왕은 생생히 존재했습니다.

그녀는 녹음을 마친 후 물었습니다.

“나 잘했나요?”

“정말 훌륭했어요.”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시 할 수 있을까요? 예전 같았어요. 아직도 할 수 있네요.”

그 말에는 단순한 직업적 자부심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재의 감각’을 회복한 기쁨이 담겨 있었습니다.

병이 드러낸 또 하나의 얼굴, ‘온유함’

줄리언 마친은 “치매가 프루에게 원래 있던 본질을 드러냈다”고 썼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유함(gentleness)’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프루는 강단 있고 도도했습니다. 명성은 그녀를 보호막처럼 감쌌고, 때로는 차갑고 예민하게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병이 깊어질수록 그녀는 점점 더 순하고, 타인에게 다정해졌습니다.

치매는 잃음의 병으로 불립니다. 이름을 잃고, 관계를 잃고, 언어를 잃습니다. 그러나 프루의 경우 그것은 ‘가식과 방어의 껍질’을 벗기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사회적 역할이나 명예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남편의 손을 잡고, 친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이 느끼는 단순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치매가 ‘인간을 파괴하는 병’이라는 통념에 대한 조용한 반론이기도 합니다. 병은 그녀를 단순하게 만들었고, 그 단순함은 그녀를 다시 인간답게 만들었습니다.

사랑이 남긴 마지막 유산

프루는 60년 넘게 배우로 살아왔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항상 남편 티모시 웨스트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연극계의 ‘황금 커플’로 불렸고, 은퇴 후에도 함께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프루의 기운은 급격히 약해졌습니다.

마친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녀는 말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내 손을 잡고 오랫동안 놓지 않았다. 그 애정과 연결감은 여전히 느껴졌다. 나는 그 인연을 팀 덕분에 이어가고 있다.”

그녀의 생애를 보면, 사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치매로 인해 기억은 사라졌지만, 사랑의 감각만큼은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억의 소멸’을 두려워하지만, 실제로 인간에게 가장 깊이 새겨진 것은 ‘감정의 기억’입니다. 사랑과 온기, 손의 감촉 같은 것들은 언어보다 오래 남습니다.

치매 이후의 존엄, 그리고 사회의 시선

오늘날 치매는 전 세계적으로 5,500만 명 이상이 겪는 질병이며, 한국에서도 고령층의 10% 이상이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치매 환자를 ‘이미 사라진 사람’처럼 대합니다. 기억을 잃었다는 이유로 그들의 인격과 존엄이 사라졌다고 오해합니다.

프루넬라 스케일스의 사례는 그 통념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그녀는 치매를 앓으면서도 무대에 섰고,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로서의 품위’를 지켰습니다. 그녀의 병은 그녀를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를 본래의 인간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년의 또 다른 가능성입니다. 치매는 끝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존재’로 살아가는 시작일 수 있습니다. 몸은 약해져도 마음의 결은 남고, 사회가 그것을 존중할 때 노인의 삶은 여전히 존엄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미소’를 위하여

마친은 마지막 인사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무엇보다도, 프루, 저는 당신을 늘 미소로 기억할 것입니다. 인간의 생이 끝난 뒤 누군가가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바로 그런 기억일 것입니다.”

그 말은 프루 개인에 대한 헌사이자, 모든 노인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인간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재산도, 명성도, 업적도 아닙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은 미소’입니다.

노년은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덜어내는 시간입니다. 프루는 그 덜어냄 속에서 온유함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온유함은, 치매조차 지워버리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

한국 사회도 초고령화에 접어들며, 치매는 더 이상 일부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의 ‘치매안심센터’나 ‘기억친구’ 제도처럼 사회적 대응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이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프루의 사례처럼 ‘병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시선’입니다. 치매는 인격의 붕괴가 아니라, 새로운 소통의 방식입니다. 언어 대신 표정으로, 기억 대신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치매를 앓는 부모님을 돌보는 자녀, 배우자를 잃은 노년의 동반자, 혹은 자신이 진단을 받은 시니어 독자라면, 프루의 삶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치매 속에서도 “나는 여왕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에는 기억을 넘어선 자존감이 있습니다.

미소로 끝맺는 생

인생의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떠나는가입니다. 프루넬라 스케일스는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미소였습니다.

그 미소는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표정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나요?” 병이든 나이든 우리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인간의 품위는, 기억이 아닌 마음의 결로 남습니다.

그것이 프루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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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ays ago
13 minutes 36 seconds

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69] 세기를 건너온 편지 — 한 병사가 남긴 인류의 메시지

– 시니어의 삶과 기억, 그리고 ‘전달되는 마음’의 의미

호주의 서쪽 끝자락, 화턴 해변(Wharton Beach)에서 평범한 한 가족이 발견한 작은 유리병은 1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인류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1916년, 제1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서 바다에 던져진 ‘병 속 편지’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것이지요.

그 병 속에는 당시 27세의 맬컴 네빌과 37세의 윌리엄 할리라는 두 병사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유럽의 서부전선으로 향하던 군함에 타고 있었고, 생의 불안과 낙관이 교차하는 그 순간, 한 장의 종이에 마음을 담았습니다.

“어머니,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음식도 괜찮고, 단 한 끼만은 바다에 묻었습니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전쟁의 불확실한 내일 앞에서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인간의 용기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100년의 세월을 건너온 편지

이 편지는 바다를 떠다닌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래언덕 아래에 묻혀 세월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바람과 파도가 쌓아 올린 모래층 속에서 편지는 햇빛도, 염분도 피하며 ‘보존’되어 있었지요.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나 마침내 자연의 손에 의해 다시 세상 위로 올라왔습니다.

이 발견을 한 브라운 가족은 “기적 같다”고 말했습니다. 글씨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고, 병에는 따개비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약 햇볕에 오랫동안 노출되었거나 파도에 떠다녔다면, 종이는 이미 바스러졌을 것입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자연이 얼마나 신비로운 기록 보관자였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본성: ‘전하고자 하는 마음’

문명은 기록으로 세워집니다. 동굴 벽화, 점토판, 편지, 디지털 파일까지 —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이 병 속 편지 역시 그 본능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네빌 상병은 “이 병을 발견하면 어머니께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가 바랐던 것은 거대한 명예도, 영웅의 이름도 아닌 단 하나의 안부였습니다.

“나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어머니, 저는 괜찮습니다.”

그 말이 바다를 건너고, 세기를 넘어 결국 후손에게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치 무덤 너머에서 손을 내민 것 같았다.”

세상은 기술로 달라졌지만, ‘전달받는 마음의 울림’만큼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시니어의 삶에 남겨진 메시지

오늘날 우리 시니어 세대의 삶도 어쩌면 이 병 속 편지와 비슷합니다. 젊은 시절 바다에 던졌던 수많은 꿈과 다짐, 사랑과 후회가 세월이라는 파도에 묻혀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우리 손에 다시 잡히는 순간이 찾아오지요.

그때마다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과연 잘 살아왔는가?”

“내가 남긴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노년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달된 이야기’로서 살아가는 또 다른 인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젊은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것은 재산이나 기술보다도 ‘기억과 마음’입니다.

네빌 상병이 남긴 짧은 편지가 가족의 역사와 공동체의 감정을 다시 일깨웠듯, 시니어 한 분 한 분의 경험 또한 사회의 기억 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대를 잇는 다리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발견의 순간’입니다. 브라운 가족이 병을 들어 올렸을 때, 그 안의 편지는 이미 100년 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누군가의 손에 닿기만을 기다리는 ‘편지 같은 존재’인지 모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말과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삶의 의미’ 아닐까요?

시니어 세대가 지금 젊은 세대에게 전할 수 있는 말은 그리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랬단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 한 문장 속에는 인생 전체가 담깁니다.

 맺으며

병 속 편지는 단순한 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의 생명력’을 증명한 하나의 사건입니다.

잊힌 듯 묻혀 있던 이야기가 세상의 빛을 다시 만날 때, 인류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병 속 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일 수도, 손편지일 수도, 사진 한 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누군가가 언젠가 그것을 발견해, 미소 지을 수 있다면 — 그 인생은 이미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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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ays ago
13 minutes 31 seconds

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68] 머리카락이 말해주는 당신의 몸 이야기

– 시니어를 위한 ‘모발 건강과 신체 신호’의 과학


우리의 머리카락은 단순히 외모를 완성하는 장식물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카락은 ‘건강의 기록자’로서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흰머리가 늘어나거나 머리숱이 줄어드는 것은 단순한 노화의 결과만이 아니라, 우리 몸속의 변화를 미세하게 반영하는 생물학적 신호이기도 합니다.

최근 연구들은 머리카락이 몸의 상태를 기록하는 “미세한 일기장과 같다고 말합니다. 머리카락 한 올에는 지난 몇 주, 몇 달간의 영양상태, 스트레스 수준, 수면 패턴, 약물 복용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머리카락을 ‘작은 뇌’, 혹은 ‘생체 센서’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모낭 속에 숨은 생명의 미세한 세계

우리의 두피에는 약 10만 개의 모낭(hair follicle)이 존재합니다. 이 모낭은 단순히 머리카락을 만들어내는 공장만이 아닙니다. 미생물, 바이러스, 진균이 공존하는 ‘미세 생태계(microbiome)’를 이룹니다.

마이애미대학교 피부과 전문의 랄프 파우스(Ralf Paus) 박사는 “모낭 속의 미생물군은 외부 병원균을 차단하고, 염증을 완화하며, 피부 상처가 회복되도록 돕는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상처가 생겼을 때 모낭의 줄기세포가 상처 부위로 이동하여 새 피부세포를 만드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합니다. 이는 머리카락이 단순히 외부 장식물이 아니라, 피부 재생의 비밀 병기임을 보여줍니다.

머리카락은 ‘시간의 기록자’

머리카락은 매일 자라며, 하루 약 0.3mm, 한 달에 1cm 정도 성장합니다.

이 성장 속도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밤보다는 아침 시간대에 더 빨리 자라며, 우리의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에 맞춰 변화합니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아침형 사람의 모발 성장 패턴과 야행성 사람의 패턴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머리카락은 우리 몸의 내부 시계를 반영하는 생물학적 ‘타임라인’ 역할을 합니다.

머리카락이 감지하는 바람, 감정, 그리고 신경

머리카락은 감각기관처럼 미세한 자극에도 반응합니다. 바람이 스칠 때, 누군가의 손길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 느껴지는 감정적 안정감은 단순한 심리효과가 아닙니다.

모낭에는 신경말단이 몰려 있어 외부 자극이 곧바로 뇌의 감정중추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이 덕분에 머리카락은 감정과 생리적 반응이 교차하는 경로로서,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닌 정서적 소통의 매개체가 됩니다. 시니어가 손주나 배우자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느끼는 따뜻함이 바로 그 예입니다.

머리카락이 보내는 ‘건강 경보’

모발이 빠지거나 가늘어지는 현상은 단순히 나이 탓이 아닙니다. 영양 결핍, 갑상선 질환, 당뇨병, 고열, 스트레스, 약물 부작용 등 다양한 요인이 머리카락에 즉각적으로 반영됩니다.

한 달간 자란 머리카락을 분석하면, 그 기간 동안의 약물 복용 이력, 스트레스 호르몬 농도, 중금속 노출 여부를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즉, 머리카락은 피 한 방울 없이도 당신의 건강 상태를 ‘조용히’ 증언하는 생체 샘플입니다.

실제로 범죄수사나 의학 연구에서 머리카락 검사는 혈액검사보다 긴 시간의 생리학적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노화와 머리카락의 변화

시니어에게 머리카락은 나이의 상징이자 건강의 거울입니다.

나이가 들면 모낭의 세포 분열 속도가 느려지고, 색소세포가 줄어들면서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흰머리가 생깁니다.

이는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세포의 에너지 생산력(미토콘드리아 기능)이 감소하고 혈류 순환이 약화된 결과입니다.

또한 만성 스트레스는 머리카락의 ‘성장기(anagen phase)’를 단축시켜 탈모를 촉진시킵니다.

규칙적인 수면, 단백질 섭취, 미량영양소(아연, 철분, 비타민 B군) 보충이 모발 건강을 지키는 기본입니다.

머리카락을 돌보는 것은 곧 나를 돌보는 일

노년기에 머리카락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지금 내 몸은 안정적인가?”
“나는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고 있는가?”
“내 수면과 스트레스는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머리카락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건강관리의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은 우리 몸의 소리를 가장 조용히, 그러나 가장 솔직하게 들려주는 기관입니다.

시니어를 위한 ‘모발 건강 습관 5가지’

ㆍ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기 — 케라틴의 주성분은 단백질입니다.
ㆍ충분한 수면 유지하기 — 밤 11시부터 새벽 2시는 모발 성장 호르몬이 가장 활발히 분비되는 시간입니다.
ㆍ철분과 아연 보충하기 — 모근의 혈류 순환을 도와줍니다.
ㆍ자극적 염색과 과도한 열기구 사용 줄이기 — 모낭 손상을 예방합니다.
ㆍ정기적인 두피 마사지 — 혈류를 개선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완화합니다.

마무리하며

머리카락은 말이 없지만, 그 안에는 당신의 삶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식습관, 수면, 감정, 스트레스, 약물, 환경—all of it—이 머리카락 속에 기록됩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머리카락을 돌보는 일은 외모 관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읽는 ‘자기 관찰의 예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카락은 조용히 자라지만, 결코 침묵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당신의 건강과 생명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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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ays ago
13 minutes

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67]‘영재’의 이름 아래 놓인 기회의 불평등

우리 사회에서 ‘영재’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특별한 의미를 지녀왔습니다. 머리가 비상하고, 이해력이 빠르며, 남보다 한 걸음 앞선 학생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부모들은 자녀가 ‘영재 판정’을 받으면 대견해하고, 학교는 그들에게 더 많은 교육 자원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여러 주(州)에서는 이 단어가 점점 더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재’로 불리는 아이들이 실제로는 ‘특권층의 아이들’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영재’는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미국의 대도시에서 교외에 이르기까지, 영재 프로그램은 교육 시스템 안에서 오랫동안 ‘성공의 관문’처럼 여겨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재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상급학교 진학 시 우선권을 얻고, 나중에는 대학 입학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냉정합니다.

같은 시험 성적을 받은 두 학생이 있을 때, 부유한 가정의 아이가 영재 프로그램에 선발될 가능성은 빈곤 가정의 아이보다 두 배 이상 높습니다.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출발선의 차이가 결과를 갈라놓는 것이지요.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뉴욕시 같은 대형 교육구에서는 “모든 아이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민단체의 민원이 끊이지 않습니다. ‘영재반’이 아니라 ‘기회반’이라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권의 이름으로 불리는 영재’

한때 미국 사회에서 영재반은 ‘꿈의 교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중산층 백인 가정의 자녀들이 주로 들어가게 되면서, 흑인·라틴계·저소득층 아이들이 배제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현실과도 닮아 있습니다. 사교육이나 조기유학을 통해 경쟁력을 쌓은 아이들이 입시와 영재 프로그램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이 제도가 본래 의도했던 ‘잠재력 발견’보다는 이미 기회를 가진 아이들을 다시 선택하는 구조로 변질되었다는 점입니다. 재능이 아니라 환경이 영재를 만든 셈입니다.

따라서 ‘영재 교육’이라는 말은 더 이상 ‘공정한 교육’을 뜻하지 않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선별이 아니라 확장이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버지니아주의 한 대형 공립학교는 ‘영재(gifted)’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대신 ‘고급 학습자(advanced learner)’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명칭의 변화가 아닙니다.

누가 ‘타고난 천재’인가를 가르는 대신, 모든 아이가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교육 철학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워싱턴 D.C.에서는 ‘영재반’이라는 단일 트랙을 없애고, 대신 수학·과학·언어 등 특정 과목별로 심화 수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비용이 더 들지만, 다양한 학생이 자신만의 강점을 발견할 기회를 얻습니다.

누구에게나 잠재력은 존재하되,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다를 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시니어 세대에게 던지는 메시지

이 이야기는 단지 어린이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60~70대의 시니어 세대 역시 한때는 ‘시험’과 ‘경쟁’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그 과정에서 “능력 중심 사회”라는 말이 정당화되었지만, 실제로는 기회의 불평등이 세대를 넘어 재생산되었습니다.

오늘의 노년층 중에도 “어릴 적 집이 가난해서 대학을 못 갔다”는 회한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영재 논쟁은 결국, 그때와 똑같은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재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재능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

시니어 세대는 인생을 돌아보며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재능은 단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배움과 기회의 축적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말이지요.

따라서 후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조기 선발이 아니라, 늦게 피는 꽃도 존중하는 교육입니다.

‘영재’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한다

영재 교육을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영재’를 조기 선발의 기준으로만 보지 말고, 평생학습의 관점에서 재정의하자는 것입니다. 특히 AI 시대를 맞은 지금, 지식의 습득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력, 협업, 창의성입니다.

이것은 태어나면서 결정되지 않습니다. 환경, 교육,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미국의 일부 학군에서는 영재 프로그램을 혁신해, 문제 해결 능력과 협동적 사고력을 평가 기준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영재반의 인종적 구성과 사회경제적 다양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선발’에서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입니다.

결론: 진짜 영재는 늦게 핀다

한국 사회 역시 ‘조기 경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영재교육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소수 특권층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노년층의 삶이 보여주듯, 인생의 성장은 언제나 두 번째 기회, 혹은 세 번째 기회에서 일어납니다. 재능을 가르는 일보다, 누구나 스스로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역할입니다.

‘영재’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것은 시험 점수나 IQ가 아니라,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의지와 끈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영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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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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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66] 성공적으로 늙어간다는 것 – 노화의 진정한 의미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사회의 시선이 교차하는 과정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적인 노화’는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질병이 없는 삶으로 규정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경제적 제약 속에 살아가는 노년에게는 ‘성공적’이라는 잣대가 오히려 상처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건강과 성공의 부담

펄 샤크너(Pearl Schachner)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잘 늙는다는 건 무엇인가?” 그녀는 평생 건강을 위해 노력했지만, 예기치 못한 질병으로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림프종과 희귀 폐 질환을 동시에 앓게 된 그녀에게 ‘성공적인 노화’는 더 이상 현실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전히 ‘활동적이고 건강한 노년’을 이상형으로 내세웁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은 마치 실패한 듯 느끼게 됩니다.

노화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이유

20세기 후반 등장한 ‘성공적 노화’라는 개념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습니다. 신체적 건강, 인지적 기능,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정의가 너무 협소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노화는 단순히 질병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고, 한계를 인정하며,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매사추세츠 대학교의 미셸 퍼트넘 교수(Michelle Putnam, director of the Gerontology Institute at the University of Massachusetts, Boston)는 “노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장애나 불평등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75세 이상 노인의 절반 가까이는 장애를 경험합니다. 이들은 노화의 속도가 더 빠르며, 사회적 지원이 부족할 때 더욱 고립되기 쉽습니다.

‘이상적인 노년’이 만들어내는 압박

오늘날 우리는 “건강하게, 활동적으로, 사교적으로 살라”는 수많은 조언 속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는 노년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단일한 이상형만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운동할 수 없는 이들, 외출이 어려운 이들, 경제적으로 제약이 있는 이들은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결국 ‘성공적 노화’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압박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사회복지학자 바브라 티터 교수(Barbra Teater, a professor of social work at City University of New York)는 “서구 문화는 성공하지 못한 노인을 ‘실패자’로 낙인찍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노화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라 수용입니다. 어떤 이는 병과 싸우며 하루를 견디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며 조용히 늙어갑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은 ‘삶을 받아들이는 힘’

아이러니하게도, 건강하게 늙기 위해서는 우리의 ‘유한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오래 살기’보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해집니다. 죽음을 부정하기보다, 그것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삶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듭니다.

아이다호의 메리 앤 스미스(Mary Ann Smith, of Eagle, Idah, 70)는 거동이 불편하지만 여전히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몸이 불편하지만, 여전히 배우고, 웃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지탱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태도가 바로 ‘가능한 한 건강하게’ 늙는 법입니다.

시니어를 위한 새로운 메시지: 성공적인 노화가 아니라 의미 있는 노화

한국 사회 역시 초고령화로 향하고 있습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이제는 ‘얼마나 오래 사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묻는 시대입니다. 완벽한 건강이나 사회적 성공이 아닌, 삶의 만족과 관계, 그리고 수용의 힘이 진정한 노화의 지표가 되어야 합니다.

“성공적인 노화”는 이제 “의미 있는 노화”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 의미는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며 평화롭게 늙어가는 데 있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경쟁이 아니라 공감에서 비롯됩니다. 나이 듦의 가치는 ‘이상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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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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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65] 부모의 부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대

– 영국이 보여주는 경고

한때 영국은 “계급의 나라”로 불렸습니다. 신분 상승의 벽이 높았고, 상류층과 서민층의 경계가 뚜렷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영국은 교육 기회 확대, 복지정책 강화, 기술 산업의 성장 등을 통해 사회적 이동성을 높여왔습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그 희망이 다시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모의 부(富)가 자녀의 삶을 결정짓는 사회”, 바로 영국이 직면한 새로운 불평등의 초상입니다.

5조5000억 파운드의 세대 간 부의 이전

영국의 재정연구소(Institute for Fiscal Studies)는 향후 30년간 베이비붐 세대가 남길 유산이 약 5조5000억 파운드(약 9,515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영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부의 이전으로, ‘유산의 시대(Inheritance Era)’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자산의 흐름이 사회를 더 공정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더 많은 기회를 확보하고, 그렇지 못한 가정의 자녀들은 출발선조차 밟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노력보다 ‘출발선’이 좌우하는 인생

영국 청년층의 주거 현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IFS의 자료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은 상위 20%의 청년은 집을 소유할 확률이 6배 높고, 평균적으로 5년 빨리 내 집을 마련합니다.

반면, 부모의 지원 없이 독립한 청년들은 주거비 부담에 허덕이며 월세와 대출 이자를 감당하느라 결혼, 출산, 저축 모두를 미루게 됩니다.

이른바 “유산이 있는 집 자식과 없는 집 자식”의 격차가 인생의 모든 단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입니다.

직장 선택, 결혼 시기, 자녀 교육, 노후 준비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경제력’이 결정권을 쥐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저축하지 않아요, 아버지가 주실 거니까요”

영국의 20~30대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흔하게 들린다고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나중에 주실 거니까 굳이 저축하지 않아도 돼.” ‘미래의 유산’을 전제로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절약과 근면’의 가치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립니다. 노동 의욕이 감소하고, 청년층의 자립 의지가 약화되며, 경제의 생산성이 둔화됩니다.

결국 부의 집중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신뢰와 사회적 통합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회적 이동성이 역전되는 시대

영국은 오랫동안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의 대표 사례로 꼽혔지만, 최근 통계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1970년대 이후 상류층 가정의 자녀와 하류층 가정의 자녀 간의 대학 진학률 격차는 3.3배에서 6.3배로 확대되었습니다.

‘부모의 부’가 ‘자녀의 교육’으로, 다시 ‘직업과 소득’으로 이어지는 세습의 고리가 강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문화적·기회적 불평등으로 확산됩니다.

결국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인생 경로를 거의 그대로 복제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세대

흥미로운 점은, 부유층의 자녀들조차 이런 구조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25세의 사회복지사 프란체스카 베이커-브루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부모님이 집을 사주거나 대출 보증을 서 주지만, 저는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어요. 그래서 훨씬 늦게 집을 사야 하고, 더 열심히 일해야 하죠. 하지만 적어도 제 힘으로 이뤄낸 성취라는 자부심은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또래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방법을 배우지 못한 세대”라며 “부모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우려를 전했습니다.

‘돈이 인생을 결정짓는 사회’의 위험성

영국 중앙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청년층의 주택 소유율은 1990년대에 비해 절반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주거비와 생활비 상승으로 인해 “청년층의 실질 구매력”은 계속 하락하고 있으며, 그 격차를 부모의 재산이 메워주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노력의 사회’에서 ‘상속의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경제적 성장보다 세습과 보존이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 즉 활력보다는 안정에 안주하는 사회로 향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이유

영국의 사례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 역시 주택 가격 폭등, 학벌·직업의 세습, ‘금수저-흙수저’ 담론 확산 등으로 이미 유사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부모 찬스”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체념은 우리 청년 세대에게도 깊이 스며 있습니다. 부모 세대가 노력으로 쌓은 부가 자녀 세대의 도전 정신을 약화시키고, 사회 전체의 이동성을 막는다면, 이는 국가의 지속 가능성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진정한 부의 상속은 돈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 삶의 태도, 사회적 신뢰여야 합니다.

세대 간 신뢰를 회복하는 길

이 문제의 해법은 단순히 세금을 늘리거나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가정과 사회가 함께 ‘기회를 공정하게 나누는 구조’를 복원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부는 세대 간 자산 이전에 대한 조세 형평성을 강화하고, 청년층의 주거 및 창업 기회를 확대해야 합니다. 또한 시니어 세대는 자녀에게 단순히 자금을 물려주는 것을 넘어, 경제적 독립과 사회적 책임의 가치를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진정한 유산이란 ‘돈’이 아니라 ‘삶을 꾸리는 힘’입니다. 그 힘이 세대를 넘어 이어질 때, 비로소 사회는 건강한 순환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영국의 부의 세습 문제는 단지 통계상의 불평등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

부모 세대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현금 다발’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능력과 공정한 기회의 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세대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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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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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64] 여행이 주는 자유, 사기가 노리는 틈

— 시니어가 꼭 알아야 할 ‘디지털 여행의 함정’

여행은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자유 중 하나입니다.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얻는 해방감, 낯선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느끼는 설렘은 인생 후반기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를 노리는 새로운 적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디지털 여행 사기꾼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항공권, 숙소, 차량, 식당 예약까지 모두 가능한 시대가 되면서 여행은 더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사기의 통로도 디지털로 옮겨왔습니다. 과거엔 골목길에서 “싼 숙소 있어요”라며 접근하던 사기꾼이, 이제는 이메일과 문자, 심지어 인공지능을 통해 사람들의 심리를 조종합니다.

‘좋은 사람’보다 ‘똑똑한 시스템’을 믿는 시대

몇 해 전 한 미국 가족이 로드아일랜드의 해변가 집을 예약했다가 가짜 부동산 사이트에 속아 수천 달러를 잃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평생을 성실히 살아온 이 가족은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돈과 시간을 잃었습니다. 사기범들은 진짜와 거의 구분이 불가능한 웹사이트를 만들어 피해자를 속였고,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진짜 부동산 중개인처럼 꾸며놓았습니다.

이 사건은 단지 미국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숙소 대행 사기’, ‘가짜 항공권 사이트’, ‘가짜 예약 문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가 특히 취약한 이유는, 오랜 세월 ‘사람을 믿는 방식’에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계약서보다 신용이, 인감보다 약속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사람’보다 ‘안전한 플랫폼’을 믿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신뢰의 단위가 바뀌었습니다. 과거엔 이웃의 추천이 신뢰의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사이트의 보안 자물쇠 표시(https), 공식 앱 결제, 2단계 인증이 새로운 ‘믿음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시니어에게 가장 위험한 유혹 —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사기꾼들이 공통적으로 이용하는 심리는 바로 ‘조급함’입니다.

“지금 예약하지 않으면 취소됩니다”, “남은 객실 단 1개!”라는 문장은 여행객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합니다. 시니어 세대는 특히 정직하고 신속한 행동을 미덕으로 배워온 세대이기에, 이런 메시지에 즉각 반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기억해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급할수록 천천히 확인하라.”

정말로 좋은 거래라면 몇 시간 후에도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반면 사기꾼은 당신이 ‘지금 당장 클릭’하게 만들기 위해 ‘시간 압박’을 이용합니다.

이는 주식 사기, 전화 보이스피싱, 심지어 연금 투자 사기에서도 똑같이 작동하는 심리적 장치입니다.

가짜의 세련됨이 진짜보다 앞서다

최근의 여행 사기는 더 이상 허술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호텔 로고를 복제하고, 진짜 웹사이트와 똑같은 URL 주소를 만들어냅니다.

심지어 ‘예약 확인서’와 ‘환불 메일’까지 자동으로 보내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사기를 당하고도 한동안 눈치채지 못합니다.

시니어 세대는 이러한 ‘디지털 위장술’에 대응하는 새로운 감각을 익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메일 주소가 “@marriot-booking.net”처럼 애매하게 바뀌어 있다면, 이는 실제 마리엇 호텔이 아닌 가짜입니다. 공식 주소는 “@marriott.com”으로 끝나야 합니다.

또한, 문자 메시지 속 링크를 클릭하기 전에, 반드시 직접 앱을 열거나 브라우저 주소창에 직접 입력해 들어가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작은 습관이 수백만 원의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손끝’이 새 신용카드가 된 시대

현금이 사라지고 카드마저 휴대폰 속으로 들어온 시대, 사기꾼들은 우리의 ‘손끝’을 노립니다.

특히 가짜 결제창, 위조된 QR코드, 가짜 CAPTCHA(로봇인증)를 통해 개인정보를 빼내는 수법이 늘고 있습니다. CAPTCHA는 원래 ‘보안 강화’의 상징이었지만, 최근엔 이를 이용해 ‘신뢰감을 조작’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시니어 세대는 ‘디지털 금고’를 관리하듯 스마트폰과 이메일을 다뤄야 합니다.

ㆍ공공 와이파이에서 결제하지 않기
ㆍ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변경하기
ㆍ가족이나 친구에게 “이 사이트 믿을 만하니?”라고 한 번 더 묻기

이 세 가지 습관만으로도 피해 확률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습니다.

여행의 즐거움, 그리고 신뢰의 회복

여행 사기의 본질은 단순히 돈을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범죄입니다. 한 번 사기를 당하면 사람에 대한 신뢰, 사회에 대한 믿음, 심지어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확신마저 흔들립니다. 특히 은퇴 후 여유 자금을 모아 여행을 준비하던 시니어에게는 그 충격이 훨씬 큽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여행의 기쁨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신뢰를 잃지 않고 여행을 즐기기 위해선, 신중함과 경계심을 새로운 여행 준비물로 챙겨야 합니다. 지금의 여행자는 비행기 표보다 ‘보안 의식’이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보다 더 강한 방패 — ‘함께 확인하는 습관’

많은 시니어들이 혼자 여행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사기꾼은 바로 그 ‘혼자’인 사람을 노립니다. 따라서 ‘혼자 결정하지 않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최고의 예방책입니다.

가족, 친구, 혹은 동호회 카톡방에 “이 숙소 예약하려는데 괜찮을까?” 한마디만 올려도, 주변에서 누군가는 “그거 가짜 사이트야!”라고 알려줄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술은 낯설고, 변화는 빠릅니다. 그러나 함께 묻고, 함께 확인하는 지혜는 여전히 강력합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함께’의 힘은 사기를 이기는 가장 인간적인 방패입니다.

지금의 여행 사기는 더 이상 ‘무식한 범죄’가 아닙니다. 그들은 심리학, 언어학, 디자인 기술을 결합한 ‘지능형 사기꾼’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우리의 신중함과 공동의 지혜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여행이란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믿음’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짐입니다.

휴대전화의 편리함이 여행의 문을 열어주는 시대일수록, 그 문 뒤에 숨어 있는 함정을 알아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칼럼이 시니어 여러분의 다음 여행을 더 안전하고, 더 평온하게 만들어드리는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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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63] 항우울제, 부작용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균형’입니다

“항우울제는 위험할까?”

이 질문은 많은 중장년층이 정신건강 상담을 받거나 우울증 진단을 받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고민입니다.

특히 은퇴 전후로 사회적 역할이 줄고, 가족·경제적 변화가 겹치면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항우울제 처방이 권유되면 대부분은 “중독되는 거 아니냐”, “기운이 더 빠진다던데”라며 망설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필립 코웬(Philip Cowen) 교수는 최근 발표한 연구에서 “항우울제의 부작용에 대한 공포는 대부분 과장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대신, 어떤 약을 선택하느냐보다 개인별 신체 반응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항우울제는 뇌의 화학적 균형을 바로잡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기분은 단순히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균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항우울제는 그중 ‘세로토닌(Serotonin)’과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라는 물질의 흐름을 조절해줍니다.

우울감, 무기력, 불안, 불면 등은 세로토닌과 관련된 신경의 흐름이 약화될 때 나타나는데, 이를 정상 범위로 회복시키는 것이 항우울제의 핵심 작용입니다.

특히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부작용이 적고 안전성이 높아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처방됩니다. 대표적인 약으로 세트랄린(Sertraline), 플루옥세틴(Fluoxetine), 시탈로프람(Citalopram)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약 복용 초기에 메스꺼움, 소화불량, 불면, 피로감, 성욕 감퇴 등의 증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개 1~2주 내 사라지지만,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해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부작용이 불편하더라도 의사와 상의 없이 중단하면, 오히려 우울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간 기능이 좋지 않다면 약 선택이 더 중요합니다

코웬 교수는 “간 효소 수치가 높거나 간 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은 세트랄린(Sertraline)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합니다.

SSRI는 간에서 대사되기 때문에, 간 기능이 약한 사람은 약물이 체내에 오래 남아 부작용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플루옥세틴(Fluoxetine)**처럼 간 대사 부담이 적은 약을 택하거나, 용량을 낮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복용 전 혈액검사로 AST, ALT, ALP 수치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는 건강검진에서 기본적으로 측정하므로, 최근 수치를 반드시 의사에게 공유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바람직합니다.

항우울제와 체중 변화 — “살이 찔까?”

시니어들이 항우울제 복용을 주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체중 증가”입니다.

SSRI 계열 약물 중 **파록세틴(Paroxetine)**은 장기 복용 시 체중이 늘 수 있으며,

반대로 **세트랄린(Sertraline)**이나 **플루옥세틴(Fluoxetine)**은 체중 변화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줄기도 합니다.

이는 항우울제의 항히스타민 성분이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용 초반에는 식습관 조절과 가벼운 운동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항우울제 복용자 중 체중 증가를 호소하는 사례의 70% 이상이 운동 부족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약 때문만이 아니라 생활습관 변화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SNRI와 TCA — 오래된 약이지만 여전히 사용되는 이유

SSRI가 효과가 충분하지 않을 때는 **SNRI(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로 변경하기도 합니다.

SNRI는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을 동시에 조절하므로 SSRI보다 강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혈압 상승이나 발한, 불면 등의 부작용이 조금 더 많습니다.

대표 약물로는 **벤라팍신(Venlafaxine, 이펙사)**과 **둘록세틴(Duloxetine, 심발타)**이 있습니다.

특히 둘록세틴은 당뇨성 신경통이나 만성 통증에도 효과가 있어, 고령자에게 자주 사용됩니다.

다만 간 기능 수치(AST, ALT)가 높거나 간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주의해야 합니다.

더 오래된 TCA(삼환계 항우울제) 계열은 효과가 강하지만, 부정맥, 어지럼증, 구갈(입마름), 변비, 시야 흐림 등 부작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주로 신경통, 불면, 만성 통증 완화용으로 저용량만 사용됩니다.

예컨대 **아미트립틸린(Amitriptyline)**은 하루 20mg 정도만 복용해도 신경통 완화에 도움이 되며,

이는 일반 항우울제(50mg)의 절반 이하 용량입니다.

복용 중 나타나는 이상 신호, 그냥 넘기지 마세요

항우울제 부작용 중에는 간 수치 상승, 손 떨림, 불규칙한 심장 박동 등 심각한 증상도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신호가 있다면 즉시 의사와 상담해야 합니다.

피부나 눈이 노랗게 변함 (황달)
메스꺼움, 복통, 소변색이 짙어짐
심한 어지럼증이나 실신 감각
불안, 초조, 수면 완전 상실

이런 증상은 대부분 복용 초기나 약물 간 상호작용에서 나타납니다.

따라서 기존에 복용 중인 고혈압·당뇨약, 진통제 등을 반드시 함께 알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약 없이도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오해는 여전히 깊습니다.

약을 먹는다는 사실이 약점처럼 느껴지거나,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병원을 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항우울제는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약이 아니라, 회복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안전장치입니다.

코웬 교수는 “항우울제의 효과는 약 그 자체보다 꾸준함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4~6주 이상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나며,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최소 6개월은 유지해야 재발 가능성이 낮습니다. 

중간에 ‘괜찮아진 것 같다’고 임의로 중단하면, 약효가 떨어지고 증상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습니다.

시니어에게 더 중요한 ‘마음 건강의 복합 관리’

시니어 세대에게 우울증은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닙니다.

은퇴, 상실, 질병, 관계 변화 등 복합적인 원인이 얽혀 있습니다. 따라서 약물만으로 완전히 해결되기 어렵고, 심리치료·사회활동·규칙적 운동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다음 세 가지는 시니어 우울 관리의 ‘기본 처방’으로 꼽힙니다.

하루 30분 이상 햇빛 아래 걷기 –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 리듬 유지 – 뇌의 안정성 회복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기 – 감정 해소를 통한 인지적 안정

항우울제는 이 과정의 ‘도움손’일 뿐, 주인공은 여전히 당신 자신입니다.

약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관계’입니다

항우울제는 뇌의 화학적 균형을 회복시켜주지만, 진짜 회복은 인간 관계와 의미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가족과 대화하고, 친구를 만나고, 취미를 이어가는 일은 약물 이상의 치료 효과를 줍니다. 우울은 고립에서 깊어지고, 대화에서 완화됩니다. 우울증은 나약함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전문가와 상의하며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야 합니다.

항우울제 부작용에 대한 과도한 공포는 오히려 회복의 기회를 늦춥니다. 정확한 정보와 의료진과의 신뢰가 동반될 때, 약은 삶의 균형을 되찾는 강력한 조력자가 됩니다. 마음의 통증도 신체의 통증처럼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두려움 없이 이야기하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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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62 ] 무엇이 남자를 만드는가

—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남성상,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요즘 젊은 세대의 세상은 우리가 자라던 시절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안에 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세상을 배웁니다. 이 디지털 세상은 지구 반대편 사람의 이야기를 단 몇 초 만에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왜곡된 정보와 이미지가 빠르게 퍼져 나갑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한 기사는 이 현상을 “디지털 남성성(Digital Masculinity)”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소년들이 자라면서 ‘무엇이 남자다움인가’를 배우는 과정이 더 이상 가정이나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인터넷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다움’이 유튜브에서 배워지는 시대

Common Sense Media에서 발표한 이 연구에 따르면, 남학생들의 4분의 3 이상이 이러한 유형의 콘텐츠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며, 3분의 2 이상이 유해한 성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콘텐츠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는 미국의 10대 소년들을 대표하는 전국 규모의 표본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틱톡, 인스타그램, 스냅챗과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소년들의 경험을 조사했고, 이들이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감정적 웰빙, 정체성,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배우는 방식에 대한 질적 인터뷰도 포함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청소년 소년 10명 중 7명 이상이 정기적으로 ‘남성성’ 관련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고 합니다. 근육질 몸매, 빠른 차, 돈, 무기, 여성의 시선을 끄는 법… 이런 영상들은 마치 ‘진짜 남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듯한 말투로 접근합니다.

문제는 그 메시지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소년들의 정체성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한창 자신을 찾아가는 시기에 이런 자극적인 이미지가 쏟아지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왜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나는 왜 저런 삶을 살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을 파고드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압박입니다.

6분의 5에 달하는 남학생들은 이러한 종류의 콘텐츠에 대한 노출이 자신들이 '진정한' 남자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강인하고, 근육질이며, 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여학생들보다 자신이 외모 관리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경쟁하며 ‘힘이 세면 인기 있는 아이’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디지털 세계가 그 기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몸, 돈, 여자, 영향력’이 남성성을 증명하는 주요한 지표로 작동합니다.

사라진 감정의 언어, 억눌린 공감의 시대

한편, 연구 결과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온라인 남성성 콘텐츠를 자주 접한 소년일수록 외로움과 낮은 자존감을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영상의 문제를 넘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소년들은 어려서부터 “울지 마라”, “남자가 왜 약한 소리를 하냐”는 말을 듣고 자라며 감정 표현을 억누릅니다. 그리고 SNS에서는 “강해야 한다”, “지배해야 한다”, “승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쏟아집니다. 결국 그들은 공감 능력을 잃고, 관계의 언어를 잃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면 ‘약한 남자’로 낙인찍히고, 침묵하면 ‘쿨한 남자’로 인정받는 구조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역설입니다. 감정이 사라진 세상에서, 소년들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플루언서가 ‘멘토’가 되는 세상

인터넷이 무서운 이유는 ‘누가 말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이 퍼지느냐’가 영향력을 결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요즘은 교사나 부모의 말보다 유튜브의 한 인플루언서가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

소년들이 좋아하는 몇몇 유명 인플루언서들은 “진짜 남자라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자에게 지배당하지 말라”, “돈과 성공이 남자의 본질”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들의 영상은 화려한 그래픽과 빠른 템포의 음악, 성공한 듯한 연출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6분의 5에 달하는 남학생들은 이러한 종류의 콘텐츠에 대한 노출이 자신들이 '진정한' 남자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강인하고, 근육질이며, 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여학생들보다 자신이 외모 관리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소년들은 무의식중에 그 이미지를 ‘성공의 모델’로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콘텐츠가 단순히 자기계발을 넘어, 여성 혐오나 사회적 불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조사에서는 10명 중 1명 이상이 여성혐오적 메시지를 자주 접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들은 이를 ‘재미’라고 말하지만, 웃으며 소비된 농담이 결국 사고방식이 되고 행동이 됩니다.

현실의 관계가 가진 힘

흥미로운 것은, 현실 속 관계가 튼튼한 소년일수록 이런 디지털 남성성에 덜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부모와 대화가 많고, 친구와 진심으로 연결된 아이들은 화면 속 세계보다 현실의 관계에서 정체성을 찾습니다. 부모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그런 영상 보면 안 돼!”라고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과 마주 앉아 있을 때, 남학생들은 친구들과 마주 앉아 있을 때보다 좌절감, 외로움, 그리고 우울감을 느낄 가능성이 낮았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부모님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남학생들(79%)은 그렇지 않은 남학생들에 비해 자존감이 낮다고 보고할 가능성이 절반밖에 되지 않았으며, 디지털 남성성 콘텐츠에 많이 노출된 남학생들은 특히 부모님의 지지를 필요로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보고, 묻는 것입니다. “이 영상에서 말하는 남자다움은 어떤 의미일까?”,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이렇게 묻는 대화는 아이의 생각을 드러내게 하고, 그 안에서 비판적 사고가 자라납니다.

디지털 시대의 교육은 통제가 아니라 대화의 기술이 되어야 합니다. ‘어른의 훈계’보다 ‘함께 질문하는 친구 같은 태도’가 더 효과적입니다.

세대 간의 남성상, 그리고 우리 세대의 과제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는 남자다움이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가족을 지킨다”, “책임을 진다”, “눈물은 삼킨다.” 그 안에는 시대의 무게가 있었고, 동시에 따뜻한 책임감이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다릅니다. 소년들에게 요구되는 ‘남성상’은 감정 없는 강인함, 완벽한 외모, 그리고 경쟁에서의 승리입니다. 이 기준은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불안과 고립 속으로 밀어넣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남자다움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우리 세대에게도 유효합니다. 은퇴 후의 삶에서 ‘남성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일은, 이제 우리 세대의 몫이기도 합니다. 육체적 강인함 대신 관계의 따뜻함, 책임의 지속성, 삶의 겸허함이 새로운 남성다움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젊은 세대가 방향을 잃고 있을 때, 우리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세대입니다. 진짜 남자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엇이 남자를 만드는가’에 대한 세대의 답변

이제 ‘무엇이 남자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소년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시대, 감정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은 결국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소년들이 스마트폰 속 세계에서 길을 잃고 있다면,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현실의 세계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세대의 역할입니다.

남자는 더 이상 ‘울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울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그것이 바로 시대를 넘어 변하지 않는 진짜 남자다움입니다.

“무엇이 남자를 만드는가?” 그 답은 아마도 단순합니다. 힘이 아니라 공감, 지배가 아니라 존중, 외로움이 아니라 함께함이 우리를 진짜 인간으로 만드는 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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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61] 인공지능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 ‘생각하는 기계’와 인간의 사유

요즘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신문을 읽어주는 AI, 글을 써주는 AI, 심지어 상담을 해주는 AI까지 등장하면서, 우리는 어느새 ‘기계와의 대화’가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계들은 정말로 ‘생각’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요?

최근 한 기자가 “나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보았다. 모두가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형 언어모델(LLM)의 수학적 구조를 탐험하며, 인간의 언어가 수치와 확률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을 직접 실험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기술 보고서가 아니라, 인공지능 시대의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었습니다.

수학으로 이루어진 ‘사유의 공간’

AI는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AI가 언어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감정이나 이해가 아니라 ‘확률적 계산’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행복할 때는”이라는 문장이 주어졌을 때, AI는 ‘웃는다’ 혹은 ‘미소 짓는다’와 같은 단어가 올 확률을 계산하여 다음 단어를 선택합니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수많은 문장 데이터에서 통계적 패턴을 학습하여 언어를 예측합니다.

우리가 감성으로 느끼는 언어의 세계가 사실은 수학으로 표현된 관계망이라는 사실은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언어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 또한 규칙과 반복, 그리고 확률의 누적 위에 세워진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AI가 그 과정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해’를, AI는 ‘패턴’을

AI는 놀라울 정도로 인간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문맥을 이해합니다. 사랑, 슬픔, 유머와 같은 감정을 경험하며 단어를 선택합니다. 반면 AI는 문맥을 계산합니다. 인간의 언어를 수학적으로 표현한 결과를 예측할 뿐, 그 의미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AI의 ‘창의성’ 또한 결국 데이터의 재조합입니다. 새로운 시를 쓰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존재하는 패턴을 다른 방식으로 배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AI의 창작은 ‘새로운 조합의 발견’이지 ‘새로운 의미의 창출’은 아닙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인공지능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해의 대상으로’

AI 기업들은 대부분 그들의 모델 내부 구조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인간의 언어, 사고, 문화의 흔적이 수학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AI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기술을 통제하고 공존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이 주제는 특히 중요합니다.

AI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풍부한 경험과 판단력을 가진 시니어가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때, 사회는 훨씬 균형 잡힌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니어가 인공지능을 활용해 글을 쓰거나, 옛 기록을 디지털로 보존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면 — 그것이야말로 인간 중심의 AI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지능’, 다시 사람에게로

기계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일은 마치 또 하나의 우주를 탐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언어, 사고, 역사, 감정이 데이터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AI를 연구하는 것은 곧 인간 자신을 연구하는 일입니다. 결국 인공지능의 발전은 ‘기계의 진화’가 아니라 ‘인간 이해의 확장’입니다.

AI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또 하나의 거울입니다.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시니어에게 전하는 메시지

기술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배움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AI를 ‘나와 다른 존재’로 여기기보다, ‘함께 배우는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을 처음 접했을 때의 낯섦도 이제는 일상의 일부가 되었듯, 인공지능 역시 이해하려는 순간부터 친숙해집니다.

우리가 기계를 이해하려는 그 순간, 기계 또한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의 지혜를 확장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AI의 ‘생각’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사고를 다시 배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세대를 넘어, 모든 이가 함께해야 할 지적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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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60] 예의의 가면 뒤에서 – 진짜 존중을 되찾는 법

한국 사회는 ‘예의 바른 나라’로 불립니다. 지하철에서도, 식당에서도, 학교에서도 “예의 있게 행동하라”는 말을 수없이 듣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 온 그 예의란 과연 무엇일까요? 겉으로는 공손해 보여도 속에서는 서로를 경멸하고, 불의에 침묵하는 것이 진정한 예의일까요?

미국의 작가 록산 게이는 「예의는 환상이다(Civility is a Fantasy)」라는 칼럼에서 “예의는 종종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도구”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단지 미국 정치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니어 세대가 살아온 한국의 근현대사는 예의를 중시하는 문화로 가득했습니다. 부모에게, 스승에게, 윗사람에게 예를 갖추는 것은 미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의가 종종 권력자의 방패로 작용했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윗사람에게 대드는 건 무례하다”, “사회가 정한 틀을 어기면 버릇없다”는 말은, 때로는 불의와 부조리에 침묵하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 되어왔습니다. 정치권의 부패, 기업의 갑질, 사회의 차별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예의의 신화’가 우리를 억눌러 왔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공손하지만, 속으로는 불편함을 참으며 웃는 태도 — 그것은 진정한 존중이 아닙니다. 진짜 존중은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상대의 지위나 나이와 상관없이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중한 폭력’이라는 또 다른 얼굴

록산 게이는 말합니다. “정중한 말로 차별을 속삭이는 사람들은, 사실상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그의 지적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도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언어들이 넘쳐납니다.

“나이 들어서 뭘 해?”, “이 나이에 공부는 무슨 공부야”, “그냥 조용히 사는 게 예의지.”

이런 말들은 친절한 조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나이 든 이들의 가능성을 지워버리는 언어의 폭력입니다.

진짜 예의는 누군가의 도전을 막지 않는 것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 그것이 존중입니다.

예의 없는 세상이 아니라, 진실한 세상

게이는 “무례함(incivility)”을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례함이란 욕설이나 폭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침묵하지 않는 용기,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행위입니다.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침묵하는 그날부터 끝나기 시작한다.” 그는 정중했지만, 결코 순응적이지 않았습니다. 예의 바르게 보이기보다는, 정의롭게 행동하기를 택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무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노인복지 제도의 허점, 고령층 일자리의 현실, 세대 간 불평등 같은 문제들은 “괜히 나서지 말라”는 예의의 이름 아래 쉽게 묻히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길이 아닙니다.

 시니어 세대의 새로운 역할

오늘의 시니어 세대는 전쟁, 산업화, IMF, 디지털 혁명 등 격변의 시대를 모두 거쳤습니다. 이제는 침묵의 세대가 아니라, 말하는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예의 바르다”는 말이 더 이상 ‘참고 견딘다’는 의미로 쓰이지 않도록, 우리는 언어의 무게를 바꿔야 합니다. 

정치인에게 질문하십시오. “왜 노인 빈곤율이 OECD 1위입니까?” 

공공기관에 묻으십시오. “왜 디지털 교육은 젊은 세대 중심입니까?”

이것은 결례가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을 묻는 예의 있는 행동입니다.

진정한 예의는 진실에서 시작된다

예의란 서로의 상처를 덮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고통을 직시하는 태도입니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보여주는 가식적 악수, 웃음 뒤에 숨겨진 계산된 관계는 예의가 아니라 연극입니다.

진짜 예의는 연극이 아니라 진심을 주고받는 대화에서 태어납니다. 시니어가 젊은 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가르침은 “예의 바르게 침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말을 할 때는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다운 품격입니다.

예의의 환상을 넘어

예의는 결코 사라져야 할 덕목이 아닙니다. 다만 예의의 목적이 바뀌어야 합니다. 겉모습을 꾸미기 위한 예의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예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무례하다”고 비난하지 말고, 오히려 “용기 있다”고 평가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예의의 본뜻—‘서로를 존중하는 질서’—를 되살리는 길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불완전함 속에서도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하려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진짜 예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시니어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유산입니다.

결론적으로, 록산 게이가 말한 “예의는 환상이다”라는 선언은, 우리에게 “가짜 예의의 껍데기를 벗고 진짜 존중을 선택하라”는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이제는 겉치레의 공손함보다, 따뜻한 진심의 대화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무례할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것이 인간다운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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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59] 부모와의 단절, 다시 이어야 할까

— 용서와 거리 사이에서

세상에는 고칠 수 있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애써 붙잡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관계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이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부모는 여전히 마음의 버팀목이지만, 또 누군가에게 부모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부모와의 단절이라는 주제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금기시됩니다. “그래도 부모는 부모지 않느냐”는 말이 너무 쉽게 입에 오르지만, 정작 그 말 뒤에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무지가 숨어 있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혹은 감옥

우리는 어려서부터 가족을 절대적인 가치로 배우며 자랍니다. “효(孝)”라는 단어는 오랜 세월 한국 사회의 도덕적 기둥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반드시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라는 전제는 이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폭언과 통제,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자란 아이에게 가족은 사랑의 상징이 아니라 상처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효도’라는 이름 아래 다시 그 관계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단절은 때로 도망이 아니라 ‘생존’의 형태일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상처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 두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가족 내 단절은 회복의 과정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불효나 냉정함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한 사람의 선택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부모님이 아프시다는데 그래도 봐야 하지 않느냐”는 말, “자식이라면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옳은 말이지만,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관계의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월이 쌓이면서 그 상처가 더 단단히 굳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사랑은 그저 일정한 거리에서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를 더 아프게 한다면, 그 사랑은 더 이상 ‘함께’가 아니라 ‘분리’ 속에서만 숨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아이러니이자, 삶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중·장년층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이런 갈등을 경험합니다. 부모 세대는 여전히 “자식은 내 소유”라는 무의식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자식 세대는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독립된 인격체로 살고자 합니다. 그 간극이 때로는 한 세대 전체의 심리적 단절로 이어집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말의 폭력성

“그래도 가족이니까 용서해야지.” 이 말은 언뜻 따뜻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강요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의 관계는 피로 이어졌다고 해서 모두 회복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인간의 고귀한 덕목이지만, 강요된 용서는 또 다른 상처가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잊지 않음’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미움조차 스스로를 보호하는 감정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이 주제는 더욱 복잡하게 다가옵니다. 자신이 부모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이 내게 냉정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많지만, 돌아보면 자신 또한 젊은 시절 자식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이 듦은 관계의 재정의

나이가 들수록 관계의 본질은 ‘소유’가 아니라 ‘존중’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는 성숙이 필요합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화해’보다 ‘이해’가 먼저라고 말합니다. 이해가 없는 화해는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만나야 한다면, 과거의 서운함을 덮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가족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함께 있음’이 아니라 ‘함께 있어도 괜찮을 수 있는 평화’입니다. 억지로 붙어 있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화해일 때가 많습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세대는 ‘효’를 의무로 배웠지만, 다음 세대에게는 그것이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돌보는 일이 사랑과 감사의 표현이라면 가장 아름답지만, 자신을 희생해야만 가능한 돌봄이라면 그것은 폭력에 가깝습니다.

시니어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당신과 거리를 두려 한다면, 그것이 반드시 불효의 표시라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히려 그 아이가 당신을 미워하기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 입장에서도, “나는 부모를 용서하지 못했다”고 해서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떤 사랑은 이해되지 않은 채로 남아도 괜찮습니다. 세상에는 ‘화해 없이도 완성되는 평화’가 분명 존재합니다.

관계의 끝에서 다시 배우는 삶

삶의 후반부에 우리는 ‘남은 관계’를 정리하는 시기를 맞습니다. 친구, 배우자, 형제자매,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까지. 그 모든 관계를 통해 남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부모와의 단절을 경험한 사람에게 그 고통은 오래 남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신을 새롭게 세우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남편의 이야기처럼, 어떤 이는 단절 속에서 오히려 평화를 찾습니다.

그 평화는 화해보다 깊고, 용서보다 조용한 것입니다. 서로를 더 이상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멀리 서 있는 평화, 그것이 어쩌면 인간관계의 마지막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부모니까, 자식이니까”라는 말로 관계를 규정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대신 우리는 이제 묻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이 ‘예’라면 함께 있고, ‘아니오’라면 멀리 서 있어도 괜찮습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상대의 평화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나이 든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마지막 사랑의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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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58] 퇴직의 물결 속에서 배우는 것

— 떠남의 기술과 남음의 지혜

최근 미국에서는 연방정부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규모의 ‘퇴직 쓰나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공직 사회를 떠받쳐온 세대들이 줄줄이 퇴임하면서, 행정기관 곳곳에서는 인력 공백이 생기고 업무가 지연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퇴직자를 처리해야 할 인사관리국조차 정작 자신의 직원 부족으로 인해 ‘퇴직자 관리’조차 버거운 상황에 처했다고 합니다. 퇴직을 기록하고 연금을 지급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퇴직 후 몇 달이 지나도 연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즉, 일하는 사람도, 떠나는 사람도 모두 어려움에 처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행정의 혼란이 아닙니다.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것은 한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퇴직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떠난 자리에는 누가 올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미국의 공무원 사회가 겪는 혼란은 사실 모든 세대가 언젠가 마주할 현실의 축소판일지도 모릅니다. 한 세대가 일터를 떠나면, 다음 세대가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채워야 합니다. 하지만 인구 구조가 바뀌고, 젊은 세대가 공공직보다 자유로운 직업을 선호하면서 ‘세대 교체의 흐름’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조직은 비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과중한 업무 속에서 점점 지쳐갑니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전달’의 예술이다

퇴직이란 단어에는 언제나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 있습니다.

“이제 나의 시대는 끝났구나.”

하지만 떠남을 ‘끝’으로만 받아들이면,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을 놓치게 됩니다.

진정한 퇴직은 ‘단절’이 아니라 ‘전달’입니다. 내가 일하며 쌓아온 경험과 기술, 실수를 통해 배운 교훈,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통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과정이 바로 퇴직의 본질이어야 합니다.

미국 정부의 예에서 보듯, 갑작스러운 퇴직의 물결은 단지 업무 공백만이 아니라 ‘지식의 공백’을 남깁니다. 문서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노하우’들이 사라지고, 사람 간의 암묵적인 이해와 신뢰의 연결망이 끊어집니다.

한 세대가 떠나고 새로운 세대가 들어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류’가 아니라 ‘맥락’입니다.

맥락이란 단어는 단순히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의 경험과 감정이 녹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끊어지면 조직은 기억을 잃습니다.

기억을 잃은 조직은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고통을 겪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책임

미국의 인사관리국(OPM) 관계자는 “이제 퇴직자를 관리할 사람조차 부족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말은 곧 ‘남아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말해 줍니다.

퇴직한 이들이 사라진 뒤, 남은 자들은 단지 ‘업무를 이어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기반을 다지는 ‘잇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는 떠나고, 어떤 이는 남지만, 두 부류 모두가 한 사회의 순환 속에서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듭니다.

한국 사회 역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각 기관과 기업에서는 경력 단절과 후속세대 부재의 문제가 빠르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행정이나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는 ‘업무의 노하우’가 개인에게만 머물러 있고,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거나 전수하는 문화가 부족합니다.

결국 누군가의 퇴직은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의 손실로 이어지게 됩니다.

퇴직 후에도 계속되는 ‘공헌의 형태’

퇴직이 곧 ‘사회적 은퇴’를 의미할 필요는 없습니다. 퇴직 후의 삶은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시기일 수 있습니다. 노년학자들은 이 시기를 “경험 자본의 개화기”라고 부릅니다. 그동안 직업에 묶여 표현하지 못했던 역량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선진국의 많은 공공기관에서는 퇴직자들을 ‘멘토링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후배 공무원들에게 실무 조언을 제공하거나 복잡한 절차를 함께 정비하도록 돕습니다.이런 제도는 단순히 ‘재취업’을 넘어, 사회적 지식의 지속성을 높이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명예퇴직 공무원 멘토단’을 만들어 행정 경험을 후배들과 공유하게 하고, 사회적 기업에서는 퇴직 전문인력을 활용하여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퇴직의 시기는 달라도 ‘의미’는 같다

누구나 각자의 시계로 시간을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60세에, 어떤 이는 70세에, 또 어떤 이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터에 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 떠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떠나느냐’입니다.

급작스럽게 떠나거나 준비 없이 퇴직을 맞이하면,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혼란이 찾아옵니다. 반대로,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고,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과정을 미리 준비한다면 퇴직은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의식’이 됩니다.

남겨진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미국의 한 연방 공무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략도, 계획도, 인수인계도 없이 떠나고 있습니다. 질문은 쏟아지지만, 답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은 단지 미국 정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새겨야 할 경고처럼 들립니다.

우리도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 떠남이 누군가의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도록 만드는 일은 지금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퇴직의 파도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러나 그 파도를 어떻게 탈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준비 없는 퇴직은 조직을 흔들지만, 지혜로운 퇴직은 사회를 성장시킵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연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는 떠나며 다음 세대를 키우고, 남아 그 자리를 지켜 줍니다. 그렇게 세대는 이어지고, 사회는 다시 한 걸음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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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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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57] 의료 현장의 미래, 병원이 교실이 되다

– 세대 연결을 통한 새로운 인력양성의 실험 –

의료 현장의 인력난은 더 이상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병원과 요양시설은 숙련된 간호 인력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의료 서비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이를 감당할 사람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테네시주에서 시작된 흥미로운 변화는 이런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병원이 고등학생을 직접 교육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인력난을 넘는 새로운 해법

테네시주의 ‘Ballad Health’는 약 7천만 달러(약 980억 원)에 달하는 인건비 부담을 안고 있었습니다. 간호사와 의료기술자를 구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였지만, 여전히 병동은 인력 부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결과 병원은 결심했습니다. “직원을 기다리는 대신, 우리가 직접 키우자.”

이 병원은 지역 고등학교와 손잡고 학생들에게 병원 실습과 이론 교육을 동시에 제공하는 ‘Ballad Health Academy’를 설립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졸업 후 면허 실무 간호사(LPN) 자격을 취득할 수 있으며, 병원은 이들을 즉시 채용합니다.

이는 단순히 “학생을 돕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병원은 인력난을 해소하고,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 없이 안정된 일자리를 얻습니다. 병원과 학교, 학생이 모두 윈윈(win-win)하는 구조입니다.

10대들의 교실은 이제 병원

이제 미국의 여러 주에서 이런 변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재단은 10개 주에 걸쳐 25억 달러(약 3조 5천억 원)를 투자해 **‘헬스케어 특화 고등학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병원은 실습장, 학교는 이론 교육을 담당합니다.

테네시주의 한 교실을 보면, 침대에 마네킹 환자가 누워 있고, 학생들은 청색 유니폼을 입은 채 혈압을 재고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또 다른 주의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MRI 기기의 작동 원리를 배우고, 물리치료의 기초를 직접 체험합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병원이 무섭다”고 말하던 학생들이 이제는 초음파 기사나 간호사를 꿈꿉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병원에 들어와 직접 환자 모형을 만져보니, 진짜 직업이구나 느꼈어요.”

병원이 교사가 되고, 사회가 학생을 키운다

이 흐름은 단순히 인력 공급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세대 간 역할의 재정의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청소년이 성인이 되어야 비로소 ‘일’의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훨씬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실제 현장 경험은 오히려 더 귀해졌습니다.

병원이 교사가 되고, 학생이 견습생으로 변모하는 이 모델은 ‘사회 전체가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상징합니다. 10대는 더 이상 미래의 인력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 세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대 연결의 지점에서 본 한국 사회

이제 한국도 이런 변화를 눈여겨봐야 합니다. 우리 역시 간호·돌봄·보건 인력의 부족이 심각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이면 요양병원과 장기요양시설의 간호 인력이 30%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병원과 교육기관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하나의 해답은 ‘세대 연결형 직업교육’입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요양보조나 치매 케어의 기초를 배워, 졸업 후 지역 복지기관에서 실습하고 근무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니어 세대가 할 수 있는 역할도 큽니다. 의료·간호·사회복지 분야에서 은퇴한 전문가들이 청소년 멘토로 나서거나, 현장 실습 지도사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현장 경험의 선배”가 필요하고, 시니어에게는 “경험을 나눌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 두 세대가 만나면 사회는 더 단단해집니다.

직업의 가치, 삶의 의미를 다시 묻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병원이 싫었지만, 이제는 사람을 돕는 일이 멋지다고 느껴요.”

그 짧은 말 속에는 ‘일’이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라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은퇴 후 다시 사회 참여를 고민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유용하다고 느낄 때 삶의 활력이 생깁니다. 그것은 청소년에게도, 시니어에게도 같습니다.

병원이 10대를 교육하는 이유는 단지 ‘직원 확보’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돌보는 사회적 연대의 복원입니다. 의료현장은 생명과 돌봄의 상징적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세대가 연결될 때, 사회 전체가 회복의 길로 나아갑니다.

앞으로의 과제: 한국의 현실 속 적용

한국의 교육 제도는 여전히 입시 중심적이고, 직업교육은 부차적인 영역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지금, ‘현장 기반 직업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사례처럼 지방의료원, 대학병원, 보건소가 지역 고등학교와 협력하여 의료 인력 직업체험 과정을 운영한다면, 청소년은 일찍부터 진로 방향을 탐색할 수 있고, 지역은 안정적인 인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간호, 물리치료, 치매 케어, 응급처치 등은 빠르게 노령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실용적인 분야입니다.

시니어 세대의 참여도 중요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활성화될수록, 은퇴자들이 교육 보조인력, 멘토,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경험은 다시 사회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세대를 연결하는 ‘배움의 사슬’

병원이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이 환자를 돌보며, 시니어가 그 곁에서 조언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의 모습입니다. 의료 인력난은 위기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가능성도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세대 간 단절을 해소하고, ‘배움’이 나이를 초월해 이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가 젊은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지식이 아니라 마음의 유산, 즉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병원이 교실이 되는 시대, 그 안에서 세대는 다시 이어지고, 사회는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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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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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56] 한두 잔의 유혹, 노년의 기억을 지운다

– 시니어를 위한 절주의 지혜

“하루 한두 잔은 괜찮겠지.”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특히 은퇴 후의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저녁 식탁에 작은 와인잔 하나쯤은 인생의 낭만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예일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는 이 ‘작은 습관’이 우리 뇌의 건강에 결코 작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24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소량의 음주조차 장기적으로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습니다. 평생에 걸친 음주 경향을 유전적 변수와 결합해 분석한 결과, ‘자주 마시는 사람’은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치매 발병 확률이 약 15% 높게 나타났습니다.

 “적당히 마시면 좋다”는 오래된 통념의 붕괴

지금까지는 “적당한 음주는 심혈관 건강에 좋다”거나 “한두 잔은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습니다. 실제로 과거 일부 연구에서는 와인 속 폴리페놀이나 맥주의 비타민B 성분이 혈류를 개선해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예일대의 캐서린 겔터너(Catherine Geltner)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기존 인식을 반박했습니다.

그녀는 “과거 나도 하루 한두 잔씩 마셨지만, 누적된 연구 결과를 보며 스스로 음주를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적은 양이라도 장기적으로 뇌의 구조적 변화를 유발하고, 그 결과 기억력 저하나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꾸준한 음주자는 뇌의 회색질(gray matter) 부피가 더 작게 나타나며, 이 부위는 기억력과 의사결정, 학습 기능을 담당합니다.

즉, 매일의 소소한 한 잔이 세포 수준에서는 ‘퇴행’의 속도를 조금씩 높이고 있는 셈입니다.

알코올은 ‘신경독’이다

스탠퍼드대 나탈리 자르(Natalie Zahr) 교수는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신경세포를 직접 손상시키는 ‘신경독(neurotoxin)’”이라고 단언합니다.

알코올은 일시적으로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교란시키며, 반복적인 노출은 해마(hippocampus)와 전두엽(prefrontal cortex)에 미세 손상을 남깁니다.

이 두 영역은 각각 ‘기억의 저장소’와 ‘판단력의 중심’으로, 노년기에 가장 취약한 부위입니다.

과음자는 물론, ‘습관적 음주자(habitual drinker)’ 역시 비슷한 위험에 노출됩니다.

자르 교수는 “뇌의 백질(white matter)이 손상되면, 신경 신호의 전달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 반응성과 집중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손상은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질환의 전조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약해지는 회복력

젊을 때는 술을 마셔도 다음날 회복이 빠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간의 대사 속도와 신경 재생 능력이 모두 떨어집니다. 특히 뇌세포의 손상은 회복되지 않거나, 회복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자르 교수는 “전두엽의 회복에는 수개월이 걸리고, 이 기간 동안 충동 조절 능력과 의사결정력이 감소한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가볍게 마시자’는 생각으로 시작된 음주가 점차 빈도를 높이고, 결국 만성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노년기의 음주는 단순한 여가 습관이 아니라 뇌 건강의 중대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마시지 않기보다, 덜 마시는 것이 먼저”

그렇다면 술을 완전히 끊어야만 할까요? 전문가들은 “현실적 절주”를 권장합니다.

‘소버 옥토버(Sober October)’나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처럼 한 달 단위로 금주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습관의 점진적 변화’입니다.

예를 들어,

주 5회 마시던 사람은 주 2회로 줄이기, 술 대신 무알코올 음료로 대체하기, 잠자기 전이 아닌 식사 중으로 시간대 조정하기 등 현실적인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또한 의료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간 기능, 혈압, 뇌 건강 상태를 점검하며 절주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뇌가 보내는 ‘적신호’에 귀 기울이기

노년기에는 단순한 피로나 건망증이 치매의 초기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술을 자주 마신다면 이러한 증상이 더 빨리, 더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주 깜빡하고, 방향 감각이 떨어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면 음주 습관을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겔터너 교수는 “이 연구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위험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즉, 절주의 목적은 도덕적 금욕이 아니라 인지 기능의 보호입니다.

시니어에게 절주는 ‘기억의 투자’다

노년의 음주는 단순히 사교적 행위가 아니라 ‘건강 자산’을 잠식할 수 있는 요인입니다. 하루 한두 잔이 당장 즐거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 대가는 잃어버린 이름, 흐릿해진 기억, 그리고 사라지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도 있습니다. 뇌는 완전히 닫힌 기관이 아닙니다. 절주를 시작하면, 뇌의 회색질 밀도와 인지 반응 속도가 서서히 회복된다는 연구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술을 줄이는 행동 하나가 곧 기억력 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맨정신’의 품격

은퇴 후의 삶은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나답게’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시니어의 절주는 스스로의 품격과 존엄을 지키는 일입니다. 한 잔의 위로가 아니라, 하루의 명료함이 우리의 미래를 더 선명하게 그려줍니다.

“오늘 한 잔 덜 마시는 용기”가 내일의 나를 지켜주는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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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55] AI 거품의 교훈: 기술의 속도보다 지혜의 속도를 믿어야 할 때

요즘 세상은 인공지능(AI)의 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AI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이미 낯설지 않고, 투자 시장에서도 AI 기업이라는 세 글자만 붙으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순식간에 몰립니다. 월가의 분석가들은 “AI 열풍이 25년 전 닷컴 버블 수준”이라고 경고합니다. IMF, 영란은행,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씨티그룹 등 글로벌 금융기관 모두가 한목소리로 “거품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기술의 파도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중 거품(double bubble)’이라는 더 복잡한 위험이 숨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과열이 아니라, 기술 자체의 발전과 시장의 기대가 동시에 폭주하는 현상입니다. 기술은 실제보다 훨씬 빨리 평가받고, 투자자는 현실보다 훨씬 낙관적으로 돈을 쏟아붓습니다.

거품은 늘 혁신과 함께 온다

구글 전 CEO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는 “거품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거품이 될지 나쁜 거품이 될지는 이유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술 발전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19세기 철도 산업이 두 번의 거품을 겪고도 결국 산업혁명의 중심이 되었듯이, AI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실제로 거품은 새로운 산업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부작용입니다. 인류는 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탐욕과 기대를 섞어 가치를 과대평가해 왔습니다. 1990년대 인터넷 붐,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그리고 지금의 인공지능 투자 열풍까지 — 역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속도가 다릅니다. AI 기술의 진화는 사람의 적응 속도를 훨씬 앞질러 가고 있습니다.

AI 투자의 현실 — ‘미래의 금광’인가, ‘거품 속의 신기루’인가

현재 오픈AI(OpenAI)는 한 해에만 85억 달러(약 11조 9,000억 원)를 투자받았습니다. 인공지능 언어 모델과 생성형 알고리즘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이 정도로 집중된 적은 없었습니다. 팔란티어(Palantir) 같은 데이터 기업은 주가수익비율(PER)이 225배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어떤 산업에서도 보기 어려운 수준의 과열입니다.

문제는 이 자금이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GPU(그래픽 처리 장치)와 같은 핵심 장비는 ‘3년 수명’이라 불릴 만큼 빠르게 구식이 됩니다. 엔비디아(Nvidia) 같은 기업은 이러한 ‘AI 열풍’의 중심에 있지만, 동시에 가장 먼저 냉각기를 맞을 위험도 큽니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일반 인공지능(AGI)’이나 ‘초지능(Superintelligence)’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투자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 가능성이라기보다 철학적 상상에 가깝습니다. AI의 학습과 창의는 여전히 인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며, 윤리적·법적 한계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중 거품’의 본질 — 기술과 기대의 괴리

AI 산업이 안고 있는 위험은 두 가지 층위의 거품입니다.

첫째는 기술 거품, 즉 실제 기술력이 과대평가되는 현상입니다.

둘째는 투자 거품, 즉 투자금이 기술의 현실적 성장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쏟아지는 현상입니다.

이 두 가지 거품이 동시에 팽창할 때 시장은 마치 이중 압력을 받은 풍선처럼 터질 위험을 안게 됩니다. 기술의 진보 속도가 현실 경제를 따라가지 못하면, 시장은 순식간에 냉각됩니다.

스티븐 울프럼(Stephen Wolfram)은 “AI는 분명히 의미 있는 기술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비관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기대가 기술보다 먼저 질주할 때 생기는 ‘착시’를 경계하는 경고입니다.

기술의 속도보다 지혜의 속도를 믿어야 한다

AI는 분명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의료, 교통, 에너지, 교육 등 거의 모든 산업이 AI를 통해 혁신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투자와 투기의 경계는 언제나 모호합니다. AI 기업이 단기간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은 미래의 혁신에 대한 기대 때문이지만, 그 기대가 수익으로 전환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이 현상은 단순한 ‘투자 이슈’가 아닙니다.

우리가 평생 쌓아온 자산과 경험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 — “모든 혁신은 거품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시장은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라는 확신에 들떠 있지만, 우리는 “AI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람직하게 바꿀 것인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시니어 투자자에게 주는 교훈

‘새로운 것’보다 ‘지속 가능한 것’을 선택하라. 기술은 변하지만 인간의 기본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단기적 유행보다 장기적 안정성을 중시해야 합니다.

‘소유’보다 ‘이해’를 우선하라.

AI 관련 주식에 투자하기 전에, 그 기술이 무엇을 해결하려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 없는 투자는 언제나 위험합니다.

‘속도’보다 ‘방향’을 믿어라.

AI는 빠르게 발전하지만, 인생의 지혜는 천천히 숙성됩니다.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리지만 정확한 판단이 결국 승리합니다.

인간의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다

AI의 진보는 인간의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지혜와 도덕, 그리고 책임의 영역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모방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양심과 신중함까지 흉내 낼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AI 거품’은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시장은 언제나 ‘더 빠르게, 더 많이’를 외치지만,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깊게, 더 단단하게’를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의 AI 열풍은 인류가 맞이한 새로운 산업혁명의 서막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품은 반드시 터집니다. 다만, 거품이 터진 뒤 남는 것은 허무가 아니라 ‘기술의 진짜 가치’입니다. 닷컴 버블이 사라진 뒤 구글과 아마존이 남았듯이, 이번 AI 버블 뒤에도 진정한 혁신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분별력’입니다. 시니어 세대의 경험과 지혜는 바로 그 분별력의 근원입니다. AI의 속도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인생을 통찰하는 눈은 그보다 더 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투자자들이 AI라는 이름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 뒤에 숨은 ‘인간의 탐욕’을 먼저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또 한 번의 거품을 피하고, 진정한 혁신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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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54] 전통의 힘이 세대를 잇는다 — 스모, 런던에서 다시 울리다

스모는 단순한 씨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 년 넘는 일본 정신문화의 축소판이며, 동시에 시대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남아 온 **‘전통의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지난 10월, 런던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린 그랜드 스모 토너먼트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일본이 세계에 보여준 정신적 유산의 현장이었습니다.

40명의 스모 선수들이 총합 65톤의 체중으로 무대를 가득 채웠고,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힘과 예의, 그리고 세월의 무게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일본 내에서 스모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들리지만, 이번 런던 공연은 오히려 ‘사라져가는 전통의 재발견’이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문화’로 다시 서는 일본의 전통

이번 행사는 1991년 이후 30여 년 만에 영국을 찾은 스모 공연입니다.

스모는 본래 일본의 신토(神道) 의식에서 유래했습니다. 풍년을 기원하며 신 앞에서 힘을 겨루는 행위가 스모의 원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단순한 제의에서 벗어나, 일본의 정신문화와 예술이 결합된 하나의 생활 미학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번 런던 무대는 그 상징적 복귀였습니다.

의식이 시작되기 전, 머리를 정갈히 묶고 정화수를 뿌리는 장면에서조차 관객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싸움이 아니라, **‘존중과 절제’**의 의식임을 직감한 것입니다. 스모의 본질은 상대를 꺾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데 있다는 철학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줄어드는 젊은 세대, 그러나 깊어지는 의미

현재 일본의 프로 스모 선수는 600명 남짓입니다. 1980년대에는 1,000명을 넘겼지만,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어린이 스모 인구 역시 빠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문화와 글로벌 스포츠의 확산 속에서, 스모는 ‘구시대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생긴 것이지요. 그러나 런던의 무대는 그 흐름을 뒤집는 신호였습니다.

관객 중에는 젊은 층도 적지 않았고, 전통 의식의 정교함과 선수들의 집중력은 새로운 감탄을 이끌어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사라져가는 전통이, 오히려 해외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온 셈입니다.

이 점은 한국의 시니어 세대가 곱씹을 만한 대목입니다.

우리 사회 또한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지만, 한 세대가 이어온 기술과 예절, 마음가짐이 여전히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노년의 힘은 ‘지켜온 것’에서 나온다

스모 선수들의 훈련은 혹독합니다. 하루 6시간 이상 체력 훈련을 하고, 1년에 15회 이상 대회를 치릅니다. 그럼에도 연봉은 약 1억 5천만 원에서 3억 5천만 원(£90,000~£200,000) 정도이며, 체중 관리와 당뇨 위험, 평균 수명 단축이라는 부담까지 안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왜 여전히 이 길을 택할까요?

그 이유는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전통을 지키는 자부심입니다. 그들의 삶은 마치 오랜 장인과 같습니다. 손에 익은 도구를 내려놓지 못하는 장인처럼, 스모 선수도 신념과 정신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이 모습은 매우 익숙한 풍경일 것입니다.

전후(戰後) 세대를 거쳐 산업화를 이끌고, 가족과 사회를 위해 한평생을 바쳐온 우리의 부모 세대 역시 같은 정신으로 살아왔습니다. 눈부신 성취 뒤에는 ‘묵묵히 버틴 시간’이 있었고, 그것이 바로 전통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세대를 잇는 무대, 런던의 스모

로열 앨버트홀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시간의 교차점이었습니다. 한편에는 일본의 전통 의상과 도효(토너먼트 경기장), 다른 한편에는 디지털 카메라로 기록하는 영국의 관객들이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습니다.과거를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감각으로 그것을 재해석하는 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문화의 형태입니다.

스모가 런던에서 박수를 받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옛것이 낡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

이 정신은 예술뿐 아니라, 노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수록, 이전 세대의 경험과 인내는 더 깊은 가치를 갖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통의 에너지’입니다.

스모의 ‘정중한 싸움’이 주는 교훈

스모는 경기이자 의식입니다.

경기장에 오르기 전, 선수들은 신에게 예를 올리고 소금을 뿌립니다. 이는 단순한 위생적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정화’를 상징합니다. 경기 중에도 승패를 떠나 서로를 존중하며, 경기 후에는 반드시 절을 합니다. 이 의식의 연속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사회적 경쟁이 치열할수록, ‘이기는 법’보다 ‘예의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노년의 품격이란, 바로 이런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문화는 살아 있는 기억이다

이번 런던 공연은 단지 일본의 한 종목이 세계에 소개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통이 미래와 만나는 장면’이었습니다. 관객들은 경기를 보며 단순한 힘의 대결보다, 그 속에 깃든 조용한 정신의 울림을 느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년기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늦은 시기가 아니라, 쌓아온 경험을 전할 시기입니다. 젊은 세대가 효율과 속도를 추구할 때, 시니어 세대는 그들에게 ‘느림의 의미’와 ‘의식의 깊이’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후반전을 아름답게 만드는 지혜입니다. 스모의 의식은 단 한 번의 승패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일의 싸움, 매일의 절제, 그리고 매일의 존중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태도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이들이 있어, 문화는 이어지고 세상은 더 깊어집니다.

런던의 도효 위에서 울린 북소리는,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였습니다 —

“지켜온 것이야말로, 미래를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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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53] 뇌 속의 염증을 잠재우는 약, 알츠하이머의 새로운 희망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치매’라는 단어는 여전히 가장 두려운 단어 중 하나입니다. 기억이 희미해지고, 이름을 잊고, 가족의 얼굴이 낯설어지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환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고통입니다. 그런데 최근 세계적인 제약사 노보 노르디스크(Novo Nordisk)가 비만 치료제로 개발한 약물이 알츠하이머 치료에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의료계와 투자 시장 모두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노보 노르디스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비만 치료제 위고비(Wegovy)와 오젬픽(Ozempic)을 개발한 회사입니다. 이 약의 주요 성분은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라는 물질로, 원래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약물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물질이 단순히 혈당을 조절할 뿐 아니라, 뇌의 염증을 줄이고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만 치료제에서 뇌질환 치료제로

노보 노르디스크는 현재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 환자 약 1,800명을 대상으로 세마글루타이드의 효과를 검증하는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30개국이 참여하는 이 연구는 3년에 걸쳐 진행되며, 그 규모와 데이터의 깊이 면에서 전례 없는 시도로 평가받습니다.

연구의 출발점은 간단합니다. “비만과 치매는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실제로 비만은 단순히 체중의 문제가 아니라, 전신 염증과 대사 불균형을 동반하는 만성 질환입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대사질환이 뇌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로 확인되었습니다. 비만 상태에서 뇌세포는 과도한 포도당과 염증 물질에 노출되며, 이는 결국 아밀로이드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의 축적을 가속화해 알츠하이머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GLP-1 계열 약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주목받습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혈당을 낮출 뿐 아니라 뇌 속 염증을 줄이고 신경세포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신체의 대사 균형을 회복시키면서 동시에 뇌 건강을 지키는 ‘이중 작용’을 하는 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치매 임상시험”

이번 연구의 책임자 중 한 명인 크리스티안 횔셔 교수(중국 하난대학교)는 “알츠하이머 분야에서 이렇게 대규모의 임상시험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GLP-1 계열 약물이 뇌 속 염증 반응을 조절함으로써 치매 진행을 늦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세마글루타이드를 복용한 집단은 위약(가짜 약)을 복용한 집단에 비해 치매 진단 위험이 53% 감소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2년 반 동안 21~43%의 치매 위험 감소가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수치는 아직 ‘완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연구 역사에서, 뇌 손상을 멈추거나 늦춘다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횔셔 교수는 이를 두고 “이번 연구가 치매 치료의 향방을 결정지을 ‘결정적 실험(definitive answer)’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엇갈린 과학계의 시선

그러나 모든 전문가가 이 약의 가능성을 동일하게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신경생리학자 이반 코이체이 교수는 “세마글루타이드가 염증을 줄이는 데는 탁월하지만, 알츠하이머의 핵심인 아밀로이드 축적을 직접 막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약이 질병의 ‘원인’을 바꾸기보다는 ‘결과’를 늦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신경학자 존 하디 교수도 “GLP-1이 치매 진행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아직 부족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그는 “이 약이 혈관 건강을 개선하고 염증을 줄임으로써 뇌에 간접적인 이익을 줄 가능성은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듯 일부 학자들은 “이번 임상이 성공하더라도, 알츠하이머 자체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인간 수명의 연장, 그리고 뇌의 한계

오늘날 인간의 평균 수명은 80세를 넘었습니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난 만큼, 뇌의 노화가 불러오는 문제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 이상이 앓고 있으며, 2050년에는 지금의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한국처럼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국가에서는 치매 관리가 사회경제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노보 노르디스크의 시도는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깊은 의미를 던집니다.

만약 세마글루타이드가 알츠하이머 발병률을 낮추거나 발병 시점을 늦출 수 있다면, 이는 단순히 신약의 성공을 넘어 ‘치매 없는 노년’이라는 인류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것입니다.

약값 논란과 접근성의 문제

한편, 이 약의 상업적 성공 여부도 큰 관심사입니다.

세마글루타이드 계열 약물은 현재 미국에서 한 달 약값이 약 499달러(약 70만 원)에 달합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 공약 중 하나로 “오젬픽 가격을 350달러(약 49만 원) 이하로 낮추겠다”고 발표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노보 노르디스크는 이에 대해 “가격 인하는 연구개발 지속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가격 논쟁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수백만 명이 복용해야 하는 약이기 때문에, 가격이 높을 경우 건강보험과 사회 복지 시스템에 막대한 부담을 주게 됩니다.

따라서 과학적 성공과 더불어 공정한 약가와 접근성 보장이 함께 논의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 될 것입니다.

치매 예방의 패러다임 전환

이번 연구가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치매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비만, 당뇨, 고혈압, 흡연과 같은 생활습관이 알츠하이머의 위험을 높이고, 반대로 혈압 관리, 체중 감량, 운동, 금연 등은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GLP-1 약물은 이러한 생활습관 개선의 생화학적 연장선에 있습니다.

즉, 약을 통해 대사 밸런스를 회복하고 뇌의 염증을 줄임으로써 신체 전체의 ‘건강한 노화(healthy aging)’를 유도하는 접근법인 셈입니다.

노보 노르디스크의 ‘기적의 약물’ 실험은 단순히 한 제약사의 야심 찬 도전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류가 “치매 없는 노년”을 향해 내딛는 새로운 시도이자, 질병과 노화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실험입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비만 치료제”라는 기존의 한계를 넘어, 신체와 뇌의 건강을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시대로 들어선 지금, 이와 같은 연구의 성과는 단순히 의학의 진보를 넘어, 노년의 품격과 삶의 질을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치매는 피할 수 없는 노년의 그림자”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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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152] 인공지능은 펀드매니저의 실력을 구분할 수 있을까

― 기술이 금융의 본질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고찰 ―

21세기 금융시장은 기술의 진보와 함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주요 기술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분야에 4,000억 달러(약 560조 원)가 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 투자가 미래의 생산성을 혁신하고, 금융시장에서도 “보이지 않는 마법의 수익률”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론에 대해, 오랜 기간 금융시장을 관찰해온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과연 기술이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이 만들어온 금융의 본질적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역사는 언제나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로 시작된다

금융시장의 거품은 늘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구호 아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8세기 초 영국의 사우스시 버블(South Sea Bubble)부터 1929년 대공황,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시장은 기술과 제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같은 순환을 반복해왔습니다.

언제나 인간은 ‘놓치면 안 된다’는 불안(FOMO: Fear of Missing Out)에 이끌려 투자 열기에 가담했고, 결국 시장은 한계점에 다다르면 폭발하듯 무너졌습니다.

인공지능이 주식시장에서 활발히 사용되는 지금도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AI가 아무리 빠르게 데이터를 분석하고 예측을 반복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탐욕과 불안의 심리 구조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의사결정 구조와 심리적 편향에 있습니다.

“합리적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시대

오늘날의 시장은 과거처럼 개인투자자가 주도하는 시장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자금이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의 위탁 형태로 움직입니다. 이들은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리스크 모델을 적용하며, 펀드매니저의 성과를 철저히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 속에서도 “합리적 비합리성(rational irrationality)”이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펀드매니저는 단기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습니다. 시장이 상승할 때는 상승 종목의 비중을 늘리고, 하락할 때는 위험 자산을 줄이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이 과정에서 장기적 가치보다는 **단기 모멘텀(가격 추세)**에 의존하게 되고, 시장 전체가 상승할 때는 거품을 더 키우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시장의 모든 구성원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더라도 결과는 비합리적 과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AI는 시장의 ‘진짜 실력’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인공지능은 새로운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AI는膨대한 데이터와 패턴 분석을 통해 펀드매니저의 성과를 평가하고, 단순한 ‘운’이 아닌 진정한 실력(skill)을 판별할 수 있다고 주장됩니다.

옥스퍼드대의 연구팀은 실제로 30년에 달하는 투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매니저의 성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각 펀드매니저의 수익률을 시장지수와 비교하는 기존 방식보다 한층 정교합니다. 예를 들어, 매니저가 특정 산업의 회복 시점을 정확히 예측했는지, 위험 대비 수익률이 일관성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를 완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투자자(소유주)는 펀드매니저의 진짜 역량을 구분할 수 있고, 매니저는 불필요한 단기 실적 경쟁에서 벗어나 장기적 안목의 투자를 지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AI도 인간의 욕망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AI의 도입은 시장 분석의 효율성을 높이지만, 거품의 본질적 순환을 멈추게 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시장의 거품은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분석하더라도, 그것을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것은 결국 인간입니다.

실제 투자 현장에서는 AI 모델이 “이 주식은 과대평가되었다”고 경고하더라도, 매니저는 “시장은 아직 상승세이니 조금 더 보자”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AI는 ‘조언자’에 머물 뿐, 인간의 심리적 편향을 제어할 수는 없습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주는 교훈 ― 데이터보다 ‘이성의 힘’을 믿어야

시니어 세대가 이 논의를 흥미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AI 시대의 투자 환경은 ‘정보의 속도’보다 ‘판단의 품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둘째, 연금과 노후자산을 운용하는 세대일수록 단기적 수익보다 장기적 안정성을 중시해야 합니다.

AI는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할 수 있지만, 그것이 ‘안정된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AI가 만들어내는 초단기 거래와 자동화된 의사결정은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위험도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이성적 판단과 감정의 균형이야말로 진정한 투자 실력입니다.

AI가 시장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은 수단일 뿐, 통찰은 인간의 몫

오늘날 금융시장에서 인공지능은 ‘게임 체인저’로 불릴 만큼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장의 본질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기술은 언제나 도구일 뿐,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통찰과 절제가 진정한 핵심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 혁신은 언제나 인간의 감정과 결합할 때 양날의 검이 되어왔습니다.

주식시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I가 펀드매니저의 성과를 수치로 분석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떤 철학으로 투자하는지는 계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이 아니라 판단의 품격을 길러야 합니다.

AI가 제공하는 분석 결과를 맹신하기보다, 그 결과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지적 독립성이 필요합니다.

AI 시대의 투자자에게 보내는 조언

시장은 앞으로도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실수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주겠지만, 시장의 사이클, 즉 탐욕과 공포가 반복되는 인간의 본성적 주기를 제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AI 투자는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입니다.

데이터를 믿되, 맹신하지 마십시오.

기술을 활용하되, 스스로의 판단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AI가 보여주는 수많은 그래프와 숫자 뒤에는 여전히 인간의 심리가 작용합니다.

결국, 성공적인 투자란 기계의 계산이 아닌 인간의 통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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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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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